라이드와 오아시스의 앤디 벨: "우리가 그 곡들을 다시 한 번 연주하지 못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by Dom Gourlay▾ 7
comments 09:39 September 28th, 2012살짝 귀띔을 해주자면 앤디 벨은 음악가로서 어느 새 25년의 세월 동안 활동해왔다. 1998년에 학창시절 친구였던 마크 가드너, 그리고 대학에서 기초미술 전공을 공부하면서 만난 스티브 쿼럴트와 로즈 콜버트와 함께 라이드를 결성하게 되면서, 벨과 그 동료들에게는 다분히 그 시대에 가장 획기적인 앨범을 만들어 낼 책임이 주어졌었다.
그들의 첫 네 개 EP와 걸작 데뷔 앨범
Nowhere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역사적 작품으로서 자랑스럽게 남아 있으며, 1992년에 이어서 발표된 Going Blank Again은 (이
앨범은 최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발매되었으며 Drowned In Sound에서는 10점 만점에 9점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모진 평을 들었었던 슈게이징 씬의 일부에서부터 자라난 밴드의 성장을 눈부시게 비추게 되어 그들에게 진정한 선구자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슬프게도, 이 모든 좋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라이드가 무너지는 데에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4년 간 두
앨범을 발표한 뒤에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라이드의 종말 이후, 벨은 1997년 브릿팝이
한창일 무렵 허리케인 #1을 결성했고, 두 개의 앨범과 비교적 성공한 한 줌의 싱글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호평이 좀처럼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주로 그들이 갖고 있었던 오아시스와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마 벨의 다음 음악적 행보가 1999년에 폴 맥기건(※역주: 귁시)의 자리를 이어 베이시스트로서 갤러거 형제와 함께하는
일이었던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이후 10년 뒤 형제의 험악한 결별이 있기 전까지 쭉 오아시스에서 활동을 계속했으며,
마지막 3개 앨범 작업에 기여해왔다.
이제, 전 오아시스 멤버인 겜
아처, 크리스 샤록 그리고 물론, 리암 갤러거와 함께, 비디 아이를 결성한 벨은 스튜디오에서 다시금 자기 자신의
천분을 발견했으며, 현재는 작년에 발매됐던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을 잇는, 그가 몸 담은 밴드의 아직 이름
없는 두 번째 앨범을 위한 데모 작업을 하고 있다. DiS가 길어진 휴식기 동안 그와 만나 Nowhere과 Going Blank
Again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에서 토론으로 바뀌어버린 이야기들과, 허리케인 #1을 그만 둔 뒤 그가 느꼈던 환멸에 대해서, 갤러거 형제와
작업해온 것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나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인; 라이드와 오아시스가 재결합해 단 한번이라도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DiS: What are you up to at present and how are the new songs shaping up?
최근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신곡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Andy
Bell: We're still at the writing stage
and then recording a few demos from what we have. We've been making demos for
pretty much the whole of this year. It's always good to have far too much music
before going into the studio and beginning the actual recording process.
여전히 작곡 단계에 머물러
있고 데모 몇 개를 녹음하고 있는 중이다. 거의 이번 해 내내 데모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 제대로 녹음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많은 곡을 쌓아 두고 있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DiS: Are you heavily involved in the writing process with Beady Eye?
당신은
비디 아이의 곡 작업 과정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가?
Andy
Bell: Me, Liam (Gallagher) and Gem
(Archer) are all equal partners when we're writing, which means we all get to
make sure none of us has a song that sounds too much like "me" - in
the collective sense of the word. It's a good way of working because it means
none of us have our individual stamp on anything we do. It's all about what's
best for Beady Eye.
나와, 리암 (갤러거) 그리고
겜 (아처) 은 곡 작업을 할 때는 모두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위치에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모두 확실히 지나치게
"나" 같은 곡을 쓰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공동체적 의미에서 말이다. 이것이 좋은 작업 방식인 이유는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작업이든 거기에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디 아이를 위해 과연 무엇이 최선일지가 모든 것의
핵심이다.
DiS: You've recently started incorporating Oasis songs into your live set with Beady Eye. Is this something you intend to do on a regular basis for the foreseeable future?
최근
비디 아이의 라이브 셋리스트에 오아시스 곡을 포함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을 위한 포석을 깔아 둘 생각인건가?
Andy
Bell: I'd say it's something we'll
definitely do again, yes. The reason we didn't play Oasis material from the
outset was because we wanted Beady Eye to create its own identity. So when we
started touring around the world we wanted to get everyone that came to our
shows used to the idea that we are a new band, and not just a continuation of
the old one, even though when you come and see Beady Eye we look pretty much
like Oasis on stage. Except Noel's (Gallagher) not there.
우리가 확실하게 다시 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이라고 말해 두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우리가 처음부터 오아시스 곡을 공연하지 않았던 이유는 비디 아이 그 자체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월드 투어를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공연에 오는 모두가 '우리는 새로운 밴드이고, 단지 옛
밴드와의 연속성만이 있는 밴드는 아니라는 것, 비록 당신이 비디 아이란 밴드를 보려고 공연에 왔을 때 우리가 꽤나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밴드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길 바랐다. 단지 노엘이 없는 것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DiS: Are you pleased with how everything's turned out for Beady Eye so far?
지금까지
비디 아이에서 이루어진 모든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가?
Andy
Bell: Yeah, it's been cool.
그렇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DiS: Some people probably don't realise or might not be aware that you've been a recording artist now for almost a quarter of a century. How does that make you feel?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한 세기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시간 동안 작곡을 해 온 음악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ndy
Bell: Old! But yeah, it is quite mad.
Twenty years is a long time. We put out the twentieth anniversary edition of Nowhere at the start of last year and now we've just done the
same thing with Going
Blank Again. Thinking back from Nowhere, twenty years before that it was the end of the
sixties, 1970 I think. To be the same difference from that with Nowhere and then again to now kind of puts it all into
perspective. You think about how young rock and roll music really is. It's not
like we're a million miles away from the creation of the (rock and roll) big
band era. We're still seeing the reverberations of that happening. The music
world keeps changing in a massive way. When you see the internet and think how
music's changed in the last ten years, some of it in ways you'd never
previously have imagined. That time has gone very fast.
오래됐네! 그렇지만 그래, 좀 화는 나는군. 20년의 세월은 아주 긴 시간이다. 우리는 작년 초에 Nowhere의 20주년 기념 앨범을 냈고 지금 이제 막 Going
Blank Again의 역시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을 발표했다. Nowhere의 시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이 앨범이 나오기 20여 년
전은 60년대의 끝자락일 것이다, 아마도 1970년이겠지. Nowhere에는 그와 같은 정도의 간극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젠 그 모든 것들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로큰롤 음악이 얼마나 젊은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로큰롤) 거대 밴드의 시대가 남긴 창작물들로부터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때가 남긴 잔향들을 볼 수 있다. 음악계는 언제나 커다란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터넷이 나타나면서 근 10년 간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은 당신이 절대로 그 이전에 상상해 보지도 못한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DiS: When you first started out with Ride in 1988, were there any expectations as to what you wanted to achieve? Did you set yourselves any goals or targets back then?
당신이
1988년에 Ride를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신이 얻고자 했던 어떤 기대하고 있던 것이 있었나? 그 당시에 어떤 목표나 타겟 같은 것을
세워 놓고 있었는가?
Andy
Bell: I think it will be a different
answer from each member of the band. We were definitely quite confident in
ourselves. We were big indie heads for a start. We were all NME readers, we all
shared similar tastes in music. Bands like The House Of Love, Spacemen 3, My
Bloody Valentine, The Stone Roses, Loop. I'm sure you could fill in the blanks!
It was mainly guitar music that we were heavily into but at the same time we
also liked The Beatles and classic albums from that era. I naively thought what
we were going to do was be like The Beatles where the music we made would be
the most far out but also the most popular. So, my ambition was to get to the
top of the charts while at the same time pushing the boundaries back as far as
they can go. I guess we kind of got there with 'Leave Them All Behind' and Going Blank Again, but overall we just fell short commercially. We
never spoke about it much but that was our aim from the beginning.
왠지 밴드 멤버들 모두 각각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 같은 질문이다. 우린 확실히 우리들에 대해서 꽤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일단 우리는 커다란 인디 신의 기수였다.
우리는 모두 NME 독자였으며,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음악 취향을 공유했었다. The House Of Love, Spacemen 3, My
Bloody Valentine, The Stone Roses, Loop 같은 밴드들 말이다. 아마 당신이 남은 빈 칸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로 그 당시 우리가 굉장히 깊게 빠져 있었던 기타 음악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비틀즈와 그 당시 그 시대에
고전의 반열에 들었던 앨범들을 좋아했었다. 난 순진하게도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일들은 마치 비틀즈처럼 이루어질 것이며 앞으로 만들어 갈 우리
음악들은 가장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또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당시 내 야망은 갈 수 있는 한 최고로 멀리
음악적 경계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차트의 가장 맨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Going Blank Again과 'Live Them All
Behind'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는 상업적으로는 아주 살짝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린 그에 대해서 절대로 많이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 시작할 때부터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DiS: I also remember even at your early shows you seemed to attract a large female following, which was quite unusual for guitar bands at that time. Did it ever occur to you that Ride would become poster boys of the indie scene back then?
필자의 기억으로는 심지어 당신의 초기 공연에서는 그 때 당시의 여느 기타 밴드들과는 달리, 당신이 많은 여성 팬 무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라이드가 인디 신의 아이돌 밴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Andy
Bell: I don't know really. I guess that
was Mark (Gardener), he was the pin-up of the indie world back then! It wasn't
something I thought about that much. What I thought you were going to say was
there were a lot of Japanese kids at our early shows, because I remember there
being loads of them at our gigs. The Japanese do tend to pick up on things
really early. Liam and Noel said the same thing happened with Oasis. The first
hardcore followings they got were with Japanese crowds.
사실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건 마크 (가드너) 였을텐데, 그가 그 당시의 인디계의 꽃돌이였으니까!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당신이 조금 전 말했던 건 내
생각에는 그 때 우리의 초기 공연에 있었던 일본인 애들 무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우리 공연에는 그런 애들이 많이 왔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어떤 것을 굉장히 빠른 시간에 발굴해내는 경향이 있다. 리암과 노엘도 오아시스에서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었다. 그들이 처음 겪었던 광팬 무리들도 바로 일본인 관객들이었다.
DiS: It's
interesting you say that as there is quite a vibrant Japanese scene at present
that's seemingly in thrall to a late of late eighties and early nineties UK
bands.
당신이 활기 넘치는 일본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들이 후기 80년대와 초기 90년대의 영국 밴드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는데.
Andy
Bell: The Japanese love shoegazing! And
so do the Americans. I never realised what an effect the '91 and '92 American
tours had. At the time we just treated it as another tour, yet now it seems
like that kind of music has gone on to become so loved in America. Except that
love wasn't shown for a good five to ten years afterwards. And then suddenly
I'd be going over there with Oasis to play and people would be coming up to me
saying, "Forget Oasis, I'm into shoegazing!"
일본인은 슈게이징을 사랑한다!
그리고 미국인도 그렇다. 나는 91년과 92년의 (라이드) 미국 투어가 끼친 영향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 때 우리는 단지 그 투어를
다른 투어와 같이 취급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음악은 지금껏 미국에서 사랑받아오면서 계속 이어져 온 것처럼 보인다. 그 이후 5에서 10여 년
간의 좋았던 시절에는 그 사랑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다음엔 갑자기 내가 오아시스와 함께 공연을 위해 그 곳으로 갔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아시스는 잊어버려, 난 슈게이징에 빠졌어!"
DiS: Was
there ever a time when you were in Oasis where you approached Liam or Noel with
the intention of making a record in a similar vein to what you did with Ride?
혹시
당신이 오아시스에 있었을 적에 리암이나 노엘에게 당신이 라이드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음반을 만들어 볼 의향을 제안해 본 적 있었는가?
Andy
Bell: Well, no not really, not in so many
words, but I think Noel definitely appreciates all that music. He likes a lot
of the bands from that era. I know back in '93/'94 when Oasis first broke he
was quoted in the press as saying his band were going to blow away all this
shoegazing crap or whatever - not those exact words but that was the
implication - yet that was never their ethos themselves. Noel definitely had a
lot of time for me. He was a bigger shoegazer than me! He was always staring
down at a pedal with Oasis, and he got a really good guitar sound from his
pedals. It was right in that category with Nick McCabe or John Squire or
myself, in that world of sound where we're all heavy on delays and distortion.
In a lot of ways, those first Oasis demos that I heard from Alan McGee reminded
me of The Jesus & Mary Chain. Some of the songs off the first album like
'Bring It On Down', they weren't singles but formed an integral part of the
live set, to me anyway sounded like the Mary Chain. I mean, I don't even know
if they'd heard of The Jesus & Mary Chain at that point. They were just
doing their own thing, but to me they had a lot of that element to them.
글쎄, 꼭 그러진 않았다, 꼭
그랬다고 말할 순 없지만서도, 그렇지만 내 생각에 노엘은 확실히 거의 모든 음악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그 시대에 나온 아주 많은
밴드들을 좋아한다. 과거 93/94년 오아시스가 막 태동할 무렵에 그는 언론에 대고 그의 밴드가 모든 슈게이징 어쩌구 하는 헛소리들을 다
날려버릴 것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도였다- 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건 절대 그들 자신의 행동 강령이 아니었다. 노엘은
확실히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나보다 더한 슈게이저였다! 그는 오아시스에서 언제나 페달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 페달로 정말로 좋은
기타 사운드를 냈었다. 사운드계 쪽으로 따지자면, 강하게 딜레이를 주고 디스토션을 거는 부류인 닉 맥케이브(※더 버브의
기타리스트)나 존 스콰이어 혹은 나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놓는 편이 더 맞았다. 내가 앨런 맥기로부터 들었던 초기 오아시스
데모 중 어떤 것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지저스 앤 메리체인을 연상시켰다. 첫 앨범에서 'Bring It
On Down' 같은 몇 가지 곡들을 꼽아보면, 그것들은 싱글은 아니었지만 라이브 셋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었는데, 내게는 어쨌든
메리체인처럼 들렸었다. 무슨 뜻이냐면, 그 당시 그들이 지저스 앤 메리체인을 들어봤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그냥 오아시스 그들
자신의 음악을 했을 뿐이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들은 지저스 앤 메리체인의 많은 음악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
DiS: I'd
agree with that, something like 'Fade Away' for example sounds like the Mary
Chain meets T-Rex or something.
전적으로
동의한다. 'Fade Away' 같은 곡은 지저스 앤 메리체인이 티-렉스나 아니면 어떤 다른 요소를 만난 느낌으로 들린다.
Andy
Bell: Yeah, totally.
맞다, 그 말대로다.
DiS: You
were all teenagers while recording Nowhere, which is quite an incredible achievement looking back.
Since then it's been cited as a landmark album, and by many publications as one
of the greatest debuts ever made. Did it occur to you at the time you were in
the process of creating something so important, pivotal even?
Nowhere를 녹음할 당시만 해도 당신들은 모두 십대였을텐데, 뒤돌아보면 꽤나 엄청난 성과였다. 그 때 이후로 그 앨범은 기념비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또 수많은 매체들을 통하여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중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때 당시 당신은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창작하는 위치에 있었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밴드의 중심이었나?
Andy
Bell: No, not in the slightest! The
actual process of recording that record was quite messy in places. I remember
we had loads of problems getting the vocals right. They were out of tune and
all over the place at times, which kind of makes it difficult for me to listen
to now knowing all that. Although Nowhere is still my
proudest achievement, more because it was our debut and we'd finally made an
album with our names on it. It's grown on me more in the years afterwards. I
don't think any of us quite realised what we'd achieved until many years later.
We'd always strived for better things and I think after we finished recording
it there was this nagging feeling that maybe we could have made a better
record. Having done it, between ourselves, we kind of agreed that next time
round we'd spend more time on the album, making it better. I think you can hear
that deliberate effort on Going Blank Again to make it more
polished.
아니,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 앨범을 녹음했던 실제 과정은 군데군데 구멍 투성이였다. 제대로 보컬을 올리는 데만도 우리가 엄청나게 애먹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협화음에다가 가끔씩 사방 팔방 흩어지기 일쑤였는데, 그걸 다 알고 있다보니 그 때문인지 지금은 그 앨범을 듣기가 힘들다. 아직도
Nowhere은 나의 자랑스러운 성과물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데뷔 앨범이었고 마침내 우리 이름을 걸고 앨범 하나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몇 년 간은 내가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중 누구도 몇 년 후 우리가 이뤄낼 것들에 대해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것에 굶주려 있었고 내 생각에는 우리가 녹음을 다 끝낸 후에도 그 느낌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더 좋은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업을 마무리 지으면서, 우리는 우리끼리, 다음 번에는 앨범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좀 더 잘
만들어보자는 그런 것에 동의했다. 내 생각엔 Going Blank Again에서 그런 좀 더 세련되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들을 들을 수
있다고 본다.
DiS: One
thing that stood out for me with Nowhere was that having released three flawless four track EPs
prior to its release, only one song out of the twelve - 'Dreams Burn Down' -
made it onto the album. Was that a conscious decision not to include anything
off your previous singles on the album?
필자가
Nowhere에서 눈에 띈다고 생각하는 점 한 가지는 그 이전에 발매했었던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4개 트랙짜리 EP 3개에 실렸던 곡들
중에서, 그 열 두 개 중 오직 단 한 곡 - 'Dreams Burn Down' - 만이 정규 앨범에 실렸다는 점이다. 정규 앨범에는 그
이전에 발매한 싱글 앨범의 어떤 곡도 수록하지 않을 것을 의식한 결정이었나?
Andy
Bell: All that time we were touring the
first three EPs I'd end up going back to my parents house in Oxford and
immediately become chained to my four-track, writing these new songs. All the
songs on Nowhere were written during that three or four month period
while we were touring. I remember being shut in this Bed & Breakfast with
the rest of the band after we'd played a gig somewhere, all four of us sharing
one room. I started playing the four chords on my guitar that would later
become 'Vapour Trail' and Mark just went, "Wow! That was pretty
special." And then Loz and Steve would start playing around with it and
that's pretty much how that song and the rest of Nowhere came
about really. Almost like a happy accident at times!
그 당시 우리는 첫 EP
3개만 들고서 투어를 돌았었는데 결국 나중에 내가 옥스포드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서 새 곡들을 쓸 동안에는, 나는 갑자기 내가 썼었던 그
네 개 트랙에 얽매이고 말았다. Nowhere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우리가 투어를 돌았던 그 3~4개월 동안에 작곡한 것이다. 내 기억에는
어딘가에서 공연을 끝내고 난 다음 나머지 밴드 멤버들과 같이 이런 Bed & Breakfast 같은 곳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넷
모두 같은 방을 썼었다. 나는 내 기타로 나중에 'Vapour Trail'이 될 코드 네 개를 막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마크가 와서는
"우와! 그거 뭔가 좀 특별한데." 그런 다음엔 로즈와 스티브가 와서 옆에서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만든 것이 그 곡과
다른 Nowhere의 나머지 곡들이다. 때로는 행복한 우연 같은 게 찾아오기도 한다!
DiS: The
following summer after the release of Nowhere you played the infamous Slough Festival with Slowdive
and Chapterhouse among others, which seemed to be where the terms
"shoegaze" and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emerged. Were
you conscious of the backlash at the time and did it affect your approach to
songwriting in any way?
Nowhere이 발매된 후 여름에 당신은 유명하지 않은 페스티벌인
Slough Festival에서 유독 슬로다이브와 챕터하우스와 함께 어울리며 공연했는데, 마치 그 풍경은 "shoegase슈게이즈"라는 단어와 함께 "씬을 자축하는 듯한" 모습이 드러나는 듯 보였다. 당신은 그 당시의 어떤 반발감을 의식했었는가, 그리고 그 일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작곡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는가?
Andy
Bell: And we were all called the Thames
Valley Scene as well. They'd been trying to find something to tag it with for a
while, and because we were all friends that hung out together we became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in their eyes. And then because we
all looked down at our pedals it became "shoegazing". It was meant to
be a put-down at the time but now it's become a genre! So I've decided to claim
the shoegaze tag as having created my own genre.
우리도 우리 모두를 두고서
Thames Valley 씬이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 사람들은 한동안 뭔가 꼬리표를 달만한 어떤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서로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 친구 사이였으니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씬을 자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 페달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슈게이징(※역주: '신발만 내려다 보고 있는')"이란
말이 생겼다. 그 당시에는 전부 묶어놓고 무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단어였겠지만 이제 그 단어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래서 난 이
슈게이징이란 꼬리표를 내 장르라고 부르고 다니기로 했다.
DiS: In the sleeve notes to Going Blank Again, you say that album was a deliberate attempt to withdraw from that whole scene.
Going
Blank Again의 슬리브 노트를 보면, 당신은 이 앨범에서 의도적으로 모든 음악 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것을 시도했다고 적어 놓았다.
Andy
Bell: Yes, without a doubt. We saw
ourselves as being far superior to all those other bands. I think any band
that's worth its salt genuinely believes they're the best band in the world,
and we were no different. As much as Ride were four very withdrawn and quiet
individuals as people, we had that confidence, that belief, in ourselves. Songs
like 'Leave Them All Behind' came purely from that belief to think bigger and
think better and move forward rather than be trapped in what was happening
already. We were never about trying to ape the sound of our previous records.
그렇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모든 밴드들을 월등히 앞서게 된 것처럼 여겼다. 나는 어떤 밴드든 자기 값어치를 하는 밴드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밴드라고 여겼고, 우리도 그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라이드가 아주 내성적이면서도 각각 개성있는 네 명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우리는 그런 자신감과, 그런 확신을, 스스로 갖고 있었다. 'Leave Them All Behind' 같은 곡들은 순전히, 이미 벌어진 일들에
묶여 있는 대신 그보다 좀 더 크게 생각하고 그보다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전진하고자 하는 믿음으로부터 나왔다. 절대로 우리가 예전에
했던 음반을 흉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DiS:
Wasn't 'Leave Them All Behind' partly inspired by The Who's 'Won't Get Fooled
Again'?
'Leave
Them All Behind'는 부분적으로 더 후의 'Won't Get Fooled Again'의 영향을 받은 곡이 아니었나?
Andy
Bell: The keyboard beginning part,
definitely, was us trying to recreate that epic sound of The Who from 'Won't
Get Fooled Again'. It wasn't about us copying it, more about getting a similar
kind of feel. We ended up with a Hammond organ and I was holding down notes.
Alan Moulder the producer had a gate going. I don't know if you're a musician
or record producer, but in order to keep time they'll sometimes use a click
track generator. He put down a really fast click track and used it to somehow,
cut the sound of the organ in and out of the studio so it became quite an
intermittent rather than constant set of notes. We hadn't actually done the
keyboard part then either. It just seemed to magically overlay itself and fit
perfectly.
키보드가 시작하는 부분이라면,
확실히, 그건 우리가 더 후의 'Won't Get Fooled Again'의 전설적인 사운드를 재창조해보려는 시도였다. 그건 우리가 그 부분을
베끼려 했던 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비슷한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 부분을 Hammond 오르간으로 마무리했고 나는
노트를 한 키 내려놓았다. 프로듀서 Alan Moulder가 그 길을 터주었다. 당신이 뮤지션인지 음반 프로듀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그 사람들은 음악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클릭 트랙(※역주: 소리를 녹음할 때 BPM의 싱크를 맞추기 위해 넣는 일종의 비트)를 넣기도 한다. 그가
곡에 굉장히 빠른 클릭 트랙을 집어 넣고는 스튜디오 안팎에서 오르간 음을 잘라내고, 뭐 어떻게 해서 그걸 쓰게 됐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트라기보다는 간간히 잔잔하게 들리는 음처럼 만들어졌다. 사실 우린 키보드 파트도 제대로 끝내지 않았었다. 그건 그냥 마법처럼 스스로
겹쳐져서는 마치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DiS: How
did you feel when 'Leave Them All Behind' gatecrashed the Top 10 singles chart?
'Leave
Them All Behind'가 싱글 차트 10위권 안으로 진입했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는가?
Andy
Bell: Absolutely ecstatic! It was
brilliant. You can't beat that kind of moment because you've made a song that
doesn't compromise. It was a nine minutes long wall of sound with no edit
whatsoever which meant no radio play either and it's landed in the top ten! You
do feel vindicated at that point.
당연히 열광했다! 정말 멋진
일이었다. 당신도 현실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만든 곡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 같은 순간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 곡은 편집 없이는 라디오
방송도 못 할 정도로 장장 9분에 걸친 기다란 사운드의 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10위권 안에 든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명예를 회복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DiS: Did
you think it this point that the mainstream was there for the taking to be
subverted by bands like Ride?
그
시점에서 당신은 라이드와 같은 밴드들이 메인스트림을 전복시켜 버렸다고 생각했는가?
Andy
Bell: Oh yes, definitely. That was the
whole idea. I think the success of 'Leave Them All Behind' was the high point
of Ride's career. But, the very strange thing about it is we followed it with
what we thought would be our big breakthrough single, 'Twisterella', and it
stalled at number 36 or whatever it got to. It never got played on the radio,
and from that point onwards things started to tail off until eventually the
band broke up. It's a weird one, the rise and fall being so close together.
오 물론, 확실히 그랬다.
그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Leave Them All Behind'의 성공은 아마 라이드 사상 최고의 커리어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점은 우리가 그 뒤를 이어 가장 강력한 싱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Twisterella'에 대한 건데, 그 곡은 한 36위권
즈음에 머물렀다. 라디오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부터 줄곧 앞을 향해 뻗어 나가던 것들이 결국 밴드가 해체하기 전까지 차츰 차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DiS:
What's most striking about Going Blank Again compared to its predecessor is its diversity. 'Chrome Waves'
references Massive Attack's 'Unfinished Sympathy' while 'Grasshopper' kind of
pre-dates post-rock by a good five years or so. Would it be fair to say you'd
already started moving in different directions musically from each other by
that point?
Going
Blank Again이 그 이전의 것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 안에 있는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다. 'Chrome Waves'는
매시브 어택의 'Unfinished Sympathy'를 참고한 곡인 반면 그 이전에 나왔던 'Grasshopper'는 한 5년 정도는 앞서 나온 듯한 포스트 록 같은 종류의 곡이었다. 아무래도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서로 음악적으로 다른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까?
Andy
Bell: We were, but at the same time we'd
always been into a lot of different types of music anyway. The main difference
between Going Blank
Again and Nowhere was that
on the second album, we were trying to incorporate as much of the music we were
into as possible into what we were doing. We were still very much a core of
four people at this time that felt the same about music so we'd share each
other's tastes. Steve was into a lot of electronic pop around this time. Around
the time of 'Leave Them All Behind', Electronic had just released 'Get The
Message', and Johnny Marr somehow made this sound (starts singing the riff) and I don't know how he did it, but next time you
play 'Leave Them All Behind' check out the lead guitar on it because I was
trying to play that. It's part of the intro and I guarantee now I've mentioned
it you'll notice what it is. Loz was into The Fall and a lot of hardcore indie.
Mark was a big fan of 1980s indie, Echo & The Bunnymen and The Cure, that
kind of thing. I was listening to a lot of sixties music, stuff like The
Beatles, Stones, Byrds, Nick Drake. All of those were major influences on Going Blank Again, the Beach Boys as well. I should also mention that
Steve's number one love was reggae. That's why there's also a lot of dub on the
record. In fact, going back to Nowhere, the only
reason why the single version of 'Dreams Burn Down' is on the album is because
McGee insisted. We had a dub version of 'Dreams Burn Down' - I think it may
have been released on the Firing Blanks rarities
compilation. Anyway, we were planning to put that on the album and McGee
stopped it at the last minute. He made us put the single version on instead.
우린 그랬었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어쨌든 언제나 많은 다른 종류의 음악에 심취해왔었다. Nowhere과 Going Blank Again 사이의 주요 차이점을 들어보자면 두
번째 앨범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우리가 심취해있던 음악을 그 안에 담아 보려고 시도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시점에는 여전히
음악에 대해선 같은 느낌을 받는 네 명의 핵심이었고 그래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해왔다. 그 당시 스티브는 일렉트로닉 팝 장르에 빠져 있었다.
'Leave Them All Behind'를 만드는 동안에는, 일렉트로닉 쪽에서는 막 'Get The Message'가 나왔었고, 그리고 조니 마가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음을 만들었는데 (리프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며) 난 그가 어떻게 그걸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당신이 'Leave Them All Behind'를 들을 때 한 번 리드 기타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거기서
그 음을 연주하려고 했었다. 그 음은 인트로의 한 부분인데 지금 내가 개런티를 내고 있는 방금 말했던 그 부분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들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로즈는 The Fall과 아주 많은 종류의 하드코어 인디 음악을 좋아했었다. 마크는 1980년대 인디 음악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에코 앤 더 버니멘이라든지 더 큐어 같은, 뭐 그런 종류였다. 나는 60년대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Byrds, Nick Drake 같은 음악들이었다. 이 모두가 Going Blank Again에 주요하게
영향을 준 것들이었고, 또 비치 보이즈도 그랬다. 또 한 가지 내가 말해두고 싶은 건 스티브가 가장 사랑했던 건 바로 레게
장르였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음악에 아주 많은 dub(더브)가 들어가게 된 이유다. 사실, Nowhere 쪽으로
돌아가보면, 'Dreams Burn Down'의 싱글 버전이 앨범에 실리게 된 유일한 이유는 맥기가 그렇게 하도록 주장했기 때문이다. 우린
'Dreams Burn Down'의 더브 버전을 갖고 있다 - 아마도 희귀 음원 컴필레이션 음반인 Firing Blanks에 실려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는 그 버전을 앨범에 넣으려고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맥기가 우리를 막아섰다. 그 대신 앨범에 싱글 버전을 넣도록 했다.
DiS: The
anniversary edition of Going Blank Again also features a live DVD of your show at Brixton Academy in
March 1992. Do you remember much about that night? Why was that show included
on the bonus disc rather than any of your others?
Going
Blank Again의 20주년 기념반에는 1992년 3월 Brixton Academy에서 했던 라이브 공연 DVD가 실려있다. 보너스 디스크에 유독 그 공연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Andy
Bell: We had quite a few of our gigs
recorded, especially around that time, but this was the one we chose because
there'd been a lot of requests from fans over the years to put that show out on
DVD. It originally came out on VHS format in 1992. There are a lot of good live
recordings in the archives but this is the one most people tend to talk about.
우리는 그다지 많은 공연 녹음
영상을 갖고 있지 않은데, 특히나 그 시기 동안이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공연을 선택했던 이유는 수년 간 팬들로부터 이 공연을 DVD로
만들어달라는 엄청난 요청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원래 이 영상은 1992년에 VHS 방식으로 찍혀서 나온 것이다. 이보다 좋은 라이브 영상들이
더 많이 보관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곤 하는 공연은 바로 이 때였다.
DiS: Does
it stand out for you as one of your favourite shows with the band?
그
공연이 당신 눈에 띄었던 건 밴드와 함께했던 공연들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Andy
Bell: I guess it represents the band at
their peak live. We did two nights at Brixton on that tour and one of them was
filmed, and if I'm being honest, we never got any bigger than that. Brixton was
as good as it got.
내 생각엔 그 공연이 밴드의
라이브의 정점을 대표한다고 본다. 그 투어에서 우린 Brixton에서 이틀을 공연했고 그 중 하나가 촬영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커질 수 없었다. Brixton 공연은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DiS: Your
third album Carnival Of Light
wasn't as well received by fans or critics as your previous records. Looking
back, do you regret that record now or do you still stand by it?
세번째
앨범이었던 Carnival Of Light는 그 이전 앨범들처럼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 때를 돌아보자면, 지금은 그
앨범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가?
Andy
Bell: I try not to have regrets about it
because we were always a band that did whatever we wanted. If we were a band
making that record now, things would be different, of course they would. You
can't make an album where your songs are on one side and Mark's songs are on
the other. You can't behave like that, it's just stupid. You've got to talk,
work through any differences you both may have. You can't just go on and do
something out of spite. It was all going a bit sour around that time and things
were allowed to happen. I don't want to say I regret it because the story of
Ride is pretty perfect in a way. We did kind of swing wildly between albums. I
mean, the first album is the classic debut then we swung towards a cleaner
sound and lose the shoegazing tag on Going Blank Again. Then
we tried to become a classic rock band like Pink Floyd or The Byrds on Carnival Of Light. From there we decided to make an album live in the
studio with Tarantula. Then you had all the personal politics going on with
that .
그 앨범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왔던 밴드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요즘에 음반을 만드는
밴드였더라면, 당연한 소리지만, 내용물은 달라졌을 것이다. 내 곡은 어느 한 쪽 방향에 있는데 마크의 곡은 다른 반대 쪽에 있고 그런 식이면
앨범을 만들 수 없다.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순 없다, 그건 멍청한 짓이다. 서로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차이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한다. 그냥 무조건 가서 악의적으로 뭔가를 해버리고 이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 때 즈음에는 모든 것들이 틀어져갔고 그렇게 될 만 했었다.
나는 라이드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완벽했다고 보기 때문에 거기에 대고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거칠게
방향을 바꾸곤 했었다. 무슨 말이냐면, 첫번째 앨범은 전형적인 데뷔 앨범이고 그 다음 Going Blank Again으로 가면서부터는 좀 더
깨끗한 사운드를 지향하고 슈게이징 꼬리표를 떼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Carnival Of Light에서는 핑크
플로이드라든지 The Byrds 같은 좀 더 클래식한 록 밴드가 되려고 노력했었다. 그 시점에서부터 우리는 Tarantula를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거기에 맞춰서 당신의 모든 개인적인 견해들을 가지면 된다.
DiS: With
regards to Tarantula, songs
like 'Dead Man' almost sound like a blueprint for the first Hurricane #1
record. Were you already planning your next project by that point?
Tarantula와 관련해 말해보자면,
'Dead Man'과 같은 곡은 거의 마치 첫 허리케인 #1 앨범을 위한 청사진처럼 느껴진다. 그 시점에서 이미 다음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는가?
Andy
Bell: No, not at all. Tarantula was very much a Ride album. The only time it stopped
being right was when we turned up at this meeting midway through the album
sessions, and Mark announced that he was leaving the band. The Hurricane #1
songs were written soon after that. I think it's fair to say by that point I
had gone very sixties! I always had been in a way. 'Seagull' off the first
album was an attempt to rewrite 'A Taste Of Honey'. You should play them both
one after the other; they're basically the same song. The Beatles were always
the touchstones for me. Even when I was the king of shoegazing!
아니, 전혀 그러지 않았다.
Tarantula는 몹시 라이드스러운 앨범이었다. 그 앨범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 유일한 순간은 우리가 앨범 세션을 거치는 과정에서 갑자기 미팅을 가졌을 때였는데, 마크가 그 자리에서 밴드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허리케인 #1의 곡들은 그 이후에 작곡된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60년대스럽게 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난 항상 어느 정도는 그래왔었다. 첫 앨범의 'Seagull'은 'A Taste Of Honey'를 다시 써보려고 시도한 곡이었다. 그 곡
다음에 다른 하나를 번갈아 동시에 연주해보라; 그 둘은 기본적으로 같은 곡이다. 비틀즈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서 기준점이 되는 밴드였다. 심지어
내가 슈게이징의 제왕이었을 적에도 말이다!
DiS:
After Hurricane #1 finished, you then got asked to join Oasis, who were
arguably the biggest band in the UK and possibly the world at that moment in
time. Was it quite a daunting experience at first?
허리케인
#1이 끝난 이후, 당신은 그 즈음 한 때 세계에서 가장 클 수 있었고 영국에서도 분명히 가장 거대했던 밴드 오아시스에게서 가입 제안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좀 주눅 들지 않았었나?
Andy
Bell: No, I wouldn't call it daunting.
Hurricane #1 kind of finished in a... It was never really right, that band. It
was basically just me trying to keep busy. When I started the second album, I
hit a pretty big writer's block that I'd been fighting for a while. I managed
to finish the record but it seemed like too much hard work to carry on. I
didn't really want to if I'm honest. I think at that point I'd lost all impetus
as a songwriter, so I quit the band and moved to Sweden. We'd just had a child
as well, my first daughter, and at that point I kind of retired from music.
That was me done, aged 29. I'd given all my guitars away and had no intention
of making music again, when a call came through from an old friend of mine that
worked in the Oasis office. She told me I was about to get a call from Noel
Gallagher asking if I wanted to join the band, and sure enough half an hour
later he's on the phone asking if I want to play bass with them. I decided to
fly back to England and meet them, still not really knowing what I wanted to
do. But then when I met them we instantly bonded and felt at home so decided to
give it a go.
그렇지 않았다, 그 때를
'주눅 들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허리케인 #1은 다 끝나가는 밴드였다... 그 밴드는 정말로,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저 나를 바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두번째 앨범을 시작할 때, 난 작곡 슬럼프에 빠져서 한동안 거기에 씨름하고 있었다. 간신히 녹음을
마무리 짓긴 했지만 그대로 계속 해나가기엔 너무 힘에 부쳤던 것 같다. 솔직히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 당시 나는 작곡가로서의
원동력을 전부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밴드를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이사했다. 우리 사이에서 첫째 딸이, 그 무렵에 태어났었고,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은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29살의, 내 모습이었다. 오아시스 사무실에서 일하던 내 오랜 친구로부터 그
전화를 받았을 무렵에는, 갖고 있던 기타들은 전부 다 누구한테 줘버린 뒤였고 작곡을 다시 시작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녀가 내게
말하길 노엘 갤러거가 내게 밴드에 가입할 생각이 있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할 것이라 했고, 아니나 다를까 30분 뒤에 그가 전화를
바꿔서는 내게 베이스를 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난 영국으로 다시 날아가 그들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여전히 내가 정말로 뭘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자마자 곧 우리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겼고 집에 돌아가서는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DiS: How
did working with Noel and Liam compare with what you'd been used to in the
past? Did it seem strange going from being the main songwriter and focal point
with both Ride and Hurricane #1 to being the bass player in what was
essentially their band?
과거
당신이 해왔던 일들과 비교해 봤을 때 노엘, 리암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땠는가? 라이드와 허리케인 #1에서 메인 작곡가와 더불어 중심점을
도맡아 해오다가 그들의 밴드로 와서는 기본적으론 그냥 베이스 연주자가 되버린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는가?
Andy
Bell: Working with the Gallaghers was
brilliant. They're both very different yet in some ways quite similar, and also
very appreciative for what I was bringing to their band. I wasn't bringing much
other than playing bass on their songs to start with, but they knew and liked
what I'd done before.
갤러거 형제와 같이 일하는 건
아주 좋았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서로 비슷한 듯 달랐으며, 또 내가 그들 밴드에 가져온 것들에 대해서 매우 고마워했다. 처음에는 곡에 맞춰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알고 있었고 또 좋아해주었다.
DiS: Your
arrival seemed to coincide with the band releasing possibly their best two
records since Definitely Maybe and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in Heathen Chemistry and Don't Believe The Truth.
당신이
정착하면서부터 밴드는 DM과 MG 이후로 Heathen Chemistry와 Don't Believe The Truth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걸작
앨범 두 개를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Andy
Bell: I'm a big fan of Don't Believe The Truth. It was definitely the best record Oasis made during
the time I was with them.
나는 Don't Believe
The Truth의 열렬한 팬이다. 그 앨범은 확실히 내가 오아시스에 있을 동안에 만들었던 가장 뛰어난 오아시스 앨범이었다.
DiS: Do
you ever see Noel and Liam burying their differences, reforming Oasis and
working together again?
당신은
노엘과 리암이 앞으로 서로의 의견 차이를 덮어두고, 오아시스를 재결성해 또 다시 함께할 것이라고 보는가?
Andy
Bell: I'd love it to happen. I think that
life's too short for it not to happen. But, in reality, do I see it happening?
At this point, no I don't. The matter rests entirely with the two brothers. It
probably should happen at some point but if they can't make it happen, no one
should force them to.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될 것 같으냐고? 현 시점에서는, 아닐 것 같다.
전적으로 그 두 형제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아마도 언젠가 어느 시점이 되면 재결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DiS:
Obviously when Oasis split up, Noel went his own way and the rest of you formed
Beady Eye. What made you choose to work with Liam rather than Noel? Was it
something that just fell into place?
오아시스가
확실하게 해체를 맞이했을 때, 노엘은 자신의 길을 선택했고 당신을 포함한 나머지는 비디 아이를 결성했다. 같이 작업하고자 하는 상대로서
노엘보다 리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맞아 떨어지게 된 어떤 계기가 있는가?
Andy
Bell: It just fell into place like that
really. When Mark decided to leave Ride we initially thought about carrying on.
But because it had been the original four, and then it would have been three,
we just felt it would have been impossible to carry it on. But then who knows
what would have happened in a parallel universe? We could have just carried on
with what we were doing and wait to see if Mark came back but that never
happens. You tend to make snap decisions in the moment of crisis I guess, and
then you have to live with them. Your life is then laid out in a certain way as
a result. That's what happens; in certain times of your life you have to go
with one big choice or the other.
그냥 실제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마크가 라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적에 우리는 처음에는 그 없이 밴드를 유지하려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쭉 오리지널 멤버가
넷이었다가, 그 때 이후로는 셋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대로 밴드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그 때
평행 세계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그저 우리 할 일이나 하면서 밴드를 계속 유지하며 마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순간적인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그 이후로는
그냥 그 선택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바로 그 결과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큰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DiS: I
guess it's better to look forwards rather than keep wondering what might have
been.
필자
생각에는 어쩌면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눈 앞을 보는 편이 더 나은 일인 것 같다.
Andy
Bell: The brave choice is always go
forward.
용감한 선택은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DiS:
You've left quite a legacy in your various back catalogues, as well as having
influenced a generation of musicians and bands. Are there any that you're
particularly proud to have cite you as being an inspiration?
당신은 명실공히
뮤지션과 밴드 세대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꽤 많은 유산들을 남겨왔다. 당신이 영향을 받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들어본다면?
Andy
Bell: Anyone who mentions anything I've
done as being an influence is alright by me. A lot of people tell me this when
I'm being interviewed and then when I read the interview they only tend to
mention Loveless! It's a recurring thing for me which is cool because Loveless is one of the greatest records ever created, and if
that record raises awareness towards a certain era or genre of music that's
fine by me. A lot of bands who are successful these days cite a lot of early
nineties guitar music as being influential; Coldplay and The Horrors being two
that spring to mind; and we fit right into that, so that's got to be a good
thing.
내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 어떤 것이든 내게는 다 맞는 소리다. 내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말하곤 하는데 막상 인터뷰를
읽어보면 사람들은 오직 Loveless만 언급하곤 한다! 내가 항상 멋지다고 말하곤 하는 게 바로 이 앨범이긴 하지만 왜냐하면 Loveless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앨범 중 가장 위대한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시대나 음악 장르의 인식을 높이는 앨범이라면 난 다 괜찮다고
본다. 요즘 들어 성공하는 수많은 밴드들은 90년대 초의 기타 음악에 영향을 받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콜드플레이와 더 호러스 이 두 밴드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들어맞고, 그래서 좋은 것 같다.
DiS:
Bearing in mind the obvious impact of Ride's music today, I guess the final
question has to be do you ever see the four of you getting back together and
playing one more time?
오늘날
라이드의 음악이 분명한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 본다면, 아무래도 마지막 질문은 당신들 네 명(※라이드)이 언젠가 다시 만나 함께
연주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Andy
Bell: Well, never say never. We're good
friends now. We get together once a year and just have a few pints and
whatever. We're all pretty busy with what we're doing, but personally, it would
be a shame if we never got to play those songs one more time.
글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곤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지금 좋은 친구 사이로 남아있다. 우린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서는 같이 술을 마시거나 그러고 놀고는 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하는 일들 때문에 늘 조금씩 바쁘지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 번 그 곡들을 연주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후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