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5일 일요일

[Dailymail. 2012.02.05] 리암 갤러거 인터뷰

http://www.dailymail.co.uk/home/moslive/article-2094857/Liam-Gallagher-Oasis-style-changing-habits.html
'3 동안 술을 끊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게 됐다' : 리암 갤러거가 오아시스, 스타일 그리고 그의 습관 변화에 대하여 말하다
By CHRIS SULLIVAN Last updated at 1:20 AM on 5th February 2012
오늘날, 리암에게서는 어딘지 개과천선한 듯한 모습이 보인다. 오아시스가 격하게 해체된 후로 2년이 흘렀다
'20여년간 온갖 이상한 건 다 해봤어. 바에 앉아서 맥주를 20 파인트 들이키고 담배도 피고 그렇게 아침 4, 5 정각이 되고 나면 당신도 노래할 없을 걸. 쓰레기 .' 리암 갤러거가 말했다.


The man I’m talking with lives with his second wife and their ten-year-old son on the edge of London’s Hampstead Heath.
We’ve been happily discussing the Duke and Duchess of Cambridge, nappy-changing and school runs, curious conversation topics for someone who torpedoed Oasis’s first American tour by insulting the audience and hitting his brother, who was banned from Cathay Pacific after an argument and whose part in a brawl in a German hotel cost his management 170,000 in fines. But all that was a decade ago.
이번에 이야기해볼 사람은 바로, 그의 두 번째 부인과 열살배기 아들과 함께 런던의 햄스테드 히스 지역 끝자락에 사는 그 남자다.
우리는 캠브릿지의 공작과 공작 부인에 대해서, 아이들 기저귀 갈이와 학교 마중에 대해서, 그리고 관중들을 모욕하고 그의 형과 충돌하면서 오아시스의 첫 아메리카 투어를 깔끔하게 말아먹기도 하고, 격한 언쟁 끝에 Cathay Pacific 항공에서 영구 이용금지를 당하기도 했으며, 독일의 호텔에서 소란을 벌인 무리의 일부가 되는 바람에 그의 매니지먼트사에게 벌금으로 무려 17만 파운드를 물기도 했던 모 씨를 위해 준비된 이상한 대화 주제들을 두고 행복하게 토론해 보았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모두 십여년 전 이야기다.

Today, Liam Gallagher is something of a reformed character. It’s over two years since Oasis acrimoniously split – or, to be more accurate, since squabbling Noel and Liam finally decided they could no longer work together or even see each other.
Their final falling-out took place before the group’s scheduled performance at the Rock en Seine festival in Paris and resulted in Liam smashing his brother’s prized guitar.
Since then, Liam has formed Beady Eye with Oasis bandmates Andy Bell, Gem Archer and Chris Sharrock, released a top-five album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and devoted time to his own fashion label, Pretty Green.
오늘날, 리암 갤러거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개과천선한 듯한 모습이 보인다. 오아시스가 격렬하게 해체된 이후로 2년이 흘렀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찮은 일로 투닥거리곤 했던 노엘과 리암이 마침내 같이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을 넘어서 심지어 서로의 얼굴조차도 볼 수 없겠다고 결정한 이후겠다.
그들의 마지막 싸움은 파리의 Rock en Seine festival에서 밴드의 공연이 잡히기도 전에 일어났고 결국 리암이 그의 형의 소중한 기타를 부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 날 이후, 리암은 오아시스 밴드 멤버였던 앤디 벨, 겜 아처 그리고 크리스 샤록과 함께 비디 아이를 결성하고, 5위권 안에 든 앨범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을 발표하며, 그가 소유한 패션 레이블인 Pretty Green에 열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I did all sorts for 20-odd years. 20여년간 온갖 이상한 일들은  해봤다.
When you sit up in a bar and drink 20 pints and smoke and it’s four, five o’clock in the morning and then you can’t sing, it’s rubbish. I’ve done my time with all that, the lack of sleep and the hangovers. Now it’s time for a change. It’s great to have a drink with your mates, but when it’s banging out two or three days of your life, it doesn’t make sense any more. I just got bored of it. I’ve got a lot going on. I want to keep this Beady Eye thing going and focus.
네가 바에 앉아 있을 때 술을 20파인트나 마시고 담배도 피고 그렇게 아침 4시, 5시 정각이 되면 그 땐 너도 노래할 수 없을 거야. 쓰레기 같은 일이지. 그렇게 지난 시절을 숙취니 수면 부족이니 하는 것들에 시달리면서 보냈어. 지금은 습관을 바꿀 때가 됐지. 친구들과 술자리에 함께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러느라고 인생의 이틀에서 사흘 정도를 훅 보내버리고 나면, 그 이상은 정말 말도 안되는 거야. 그냥 이젠 그렇게 사는 게 지겨워졌어. 난 해야 할 게 아주 많아. 난 비디 아이를 계속 하고 싶고 이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

I gave up drinking for three years – I loved it. 3 동안 술을 끊었다 - 이러는 게 좋다.
The kids seemed to like me a lot more. They said, ‘Your eyes aren’t red and you don’t mumble so much.’
(덕분에) 애들이 좋아하는 같아. 걔들이 나한테 그러는데, '아빠 눈이 빨갛지도 않고 그렇게 웅얼거리지도 않아' 라고 하더라고.

I’m still a young man and I want to get stuff done. 아직 젊은 남자고 내  일을 끝내고 싶다.
I love running. I’ve got a shed, but there’s not much in it – just a Flymo. Get back to me in a year and you might see some mad gardening going on.
난 달리는 것을 좋아해. 땀을 좀 흘리긴 하지만, 많이 그러지도 않아 - 그냥 Flymo(*일렉트로룩스의 잔디깎기 기계 브랜드)야. 1년 쯤 지나고 날 다시 찾으면 아마도 미친 듯이 정원 손질을 하는 모습을 볼지도 몰라.

It takes more than blood to be my brother. 형과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I’ve still got the right hump and now the gloves are off. We’re still not talking. If people think I’m going to be happy about the Oasis split, then they’re wrong. Even though I love Beady Eye, I’d prefer to still be in Oasis, because that was my thing. Oasis was my life.
난 아직도 정말로 기분이 안 좋고 지금은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도 됐어. 우린 아직도 서로 얘기 안 해. 그치만 만약 사람들이 내가 오아시스가 해체돼서 이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걔네가 틀렸어. 비록 내가 비디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난 오아시스에 있는 게 더 좋아. 왜냐하면 그 밴드는 내 마음에 드는 밴드였으니까. 오아시스는 내 삶이었어.

I live and breathe rock ’n’ roll. 나는 로큰롤을 숨쉬면서 살아간다.
This isn’t a hobby for me. It’s been great doing all these little shows, going back to square one. It’s good to see the crowd and hear them. Long may that continue. Big gigs are soulless masses of people – I’m glad I’ve done them, but I don’t miss them. I’ve got nothing to prove anyway.
이 일은 나한테 취미 같은 게 아냐. 그 모든 작은 공연들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해내는 건 정말 굉장했어. 내 눈으로 관중들을 보고 듣는 게 좋아. 아마 계속 그렇게 되겠지. 큰 공연에는 영혼 없는 사람들 무더기로 가득하니까 - 물론 그런 공연을 했던 건 기쁘지만, 별로 그게 그립진 않아. 어쨌든 난 딱히 뭘 따로 증명해야 할 필요는 못 느끼겠어.

I’d rather people looked like me than Ronan Keating  사람들이 적어도 Ronan Keating*보다는 차라리 나처럼 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아일랜드 아이돌 Boyzone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I don’t mind it at all. The more of me in the world the better, I say. I’m down with it. I’ve just got to keep ahead of the pack.
그래도 신경은 . 그치만 말은, 세상에서는 쪽이 많은 편이  나을 거라고. 내가 그런 건  친하지. 그냥 내가 나갔었잖아.

How can you be stylish if you never wash? 씻지도 않고서 어떻게 스타일리시해질  있겠어?
Look at these grungers – they just walk around filthy with matted hair and smelly T-shirts, looking like tramps – where’s the park bench and the Special Brew? And I despise this new disease of indie student music – Bloc Party and all that nonsense.
그 개러지거지 놈들 좀 보라고 - 그냥 떡진 머리에다가 냄새 나는 티셔츠 뒤집어쓰고 지저분하게 돌아다니면서, 무슨 부랑자마냥 해가지고 - 공원 벤치하고 Special Brew(*떠돌이, 노숙자 부류가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진 맥주 브랜드)는 어디다가 두고 왔어? 그리고 난 학생 인디 놈들 음악이 앓고 있는 새로운 질병이 정말 싫어. Bloc Party라든지 그 쓸데없는 놈들 전부 다.

I don’t want to reinvent the wheel.  이미 있는 걸 하느라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I always thought Brian Jones looked the b*******. George Harrison was cool and Paul Weller always looked good. Those are the three most stylish men in history for me, and the most overrated is my brother. He dresses like Val Doonican. But it’s the usual stuff, Sixties rock ’n’ roll – the Kinks, the Who, the Stones – that’s the vibe for me. It’s fine as it is, so let it be.
난 언제나 브라이언 존스가 개**같이 보인다고 생각했어. 조지 해리슨은 쿨했고 폴 웰러도 언제나 멋있었지. 나한테는 이 셋이 역사상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자들이고, 가장 과대평가 받은 사람은 우리 형. 형은 무슨 Val Doonican(*아일랜드의 옛날 가수. 리암은 노엘이 촌스럽고 구닥다리라는 식의 의미에서 빗댄 모양)처럼 하고 다닌다고. 그렇지만 늘 있는 것들, 60년대의 로큰롤 - 더 킹크스, 더 후, 롤링 스톤즈 - 들이 나한테 맞는 분위기야. 언제나 그렇듯 멋지지. 그러니까 그냥 하는 거야.

If it doesn’t look good on me then I’m not having it.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갖고 있지 않다.
I keep an eye on things. I want to make the best clothes for the lad on the street or the next rock star in the making. The way I go about it is that I go through the wardrobe and think, ‘I’d like that new, in a nicer cloth’, and get it made. Or I delve into the past and make the clothes I always wanted. I see my label, Pretty Green, going everywhere.
난 옷들을 주시하고 있어. 난 거리를 걷는 젊은 놈들이나 성장하고 있는 다음 세대 록스타를 위한 최고의 옷을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하기 위한 내 방식은 일단 내 옷장을 뒤진 다음에, '원단 좋은 걸로, 새로운 놈이 필요해' 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고는 가서 만들면 끝. 아니면 과거를 좀 뒤져보거나 하고 나면 내가 언제나 원하던 옷을 만들게 돼. 나는 어디를 가든지, 내 옷 브랜드, 프리티 그린을 보고 있어.

Quadrophenia – the music, the clothes – is the height of British style. 콰드로피니아는 - 음악으로든, 옷으로든 - 브리티시 스타일의 절정이다.
Better than the Madchester scene or Britpop or anything else. The clothes were cool. A lot of people had nothing in those days – just a scooter and a house party to go to in Brighton. But it was good. There’s too much going on these days. There’s too much choice and not enough quality.
매드체스터 신이든 브릿팝이든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훨씬 더 낫지. 옷들도 멋있었어.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 그냥 스쿠터를 몰고 브라이튼에 가서 하우스 파티를 벌이는 건데. 그렇지만 그게 좋았어. 요즘은 너무 뭐가 많아. 고를 건 너무 많은데 딱히 그만큼 뭐가 좋지도 않고.

There are more hardcore mods than me. 나보다  하드코어한 모드족들이 많다.
확실히 난 로커 쪽보다는 모드겠지만, 그렇지만 난 닐 영도 좋아하고, 핑크 플로이드도, 비틀즈도, 진짜로 특이하고 사이키델릭한 것들을 좋아해. 솔직히 말해서, 난 나만의 방식을 갖고 있어. 내 스타일은 축구에서 나오기도 하고 모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나와.

Everyone had a certain look in the Eighties. 누구나 어느 정도는 80년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Music and football collided then. Meanwhile, a lot round my way used to wear dinner jackets and flares and walk about with walking sticks, and they looked cool.
그리고 음악과 축구가 충돌하는 거지. 그 동안, 내 주변의 대부분은 정장 재킷과 나팔바지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서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들은 쿨해 보였지.

I never sold drugs, but to get the odd thing I was a bit of a blagger. 전혀 마약을 팔아본 없지만, 일진 노릇을 때는 이상한 해본 적은 있다.
I had honest work in a garden factory creosoting fences, until the boss told me to clean the toilet out. I cleared off, then I worked with my dad on his building firm, went out labouring. I’d go to church with my mum and then go home and see her get proper battered by my dad. She left him when I was ten.
울타리에 크레오소트(*목재 보존재)를 바르는 공장에서 정직하게 일했던 적은 있었어, 사장이 나한테 화장실 청소를 시키기 전까지는. 거길 빠져 나오고 나서는, 아빠가 하는 가게에서 같이 일했었고, 막노동하러도 나갔었어. 엄마하고는 같이 교회에 가고는 했었는데, 집에 돌아오고 그 다음엔 엄마가 아빠한테 제대로 맞는 걸 보고. 엄마는 내가 열 살 때 아빠를 떠났어.

Starting out with Oasis didn’t freak me out at all. 오아시스를 시작하는 내겐 전혀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다.
I’d been digging holes in Manchester for the previous four years, so I was ready for it. I was like: here’s your spade, you can have it! It all felt good to me. I didn’t take five years off to sit down and talk about how great I am. We went straight into the studio after the fight in Paris and we haven’t stopped since. You only get one crack at it, so you might as well get on with it, do it well and do it right. The busier the better.
이미 지난 4년간 맨체스터에서 땅구멍을 파고 있었다고, 그러니 이미 준비된 상태였어. 이런 느낌으로: 여기 스페이드 카드가 있어. 이제 이 카드는 네 거다! 모든 것이 다 좋게 느껴졌어. 난 5년 동안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내가 얼마나 위대한 놈인지 떠들고 다녔지. 파리에서 싸우고 난 다음에는 우린 곧장 스튜디오로 들어갔고 그 때 이후로는 멈춰 본 적이 없어. 네가 뭔가 노력해 볼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이야,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잘하고 확실하게 똑바로 하는 편이 가장 좋아. 바쁠 수록 더 좋지.